[요약] 획: 글자쓰기에 대해 text

 헤릿 노르트제이 지음, 유지원 옮김, <획: 글자쓰기에 대해>, 안그라픽스, 2014

Gerrit Noordzij, <The Stroke: Theory of Writing>



“단어의 발명". ‘발명’이라는 단어가 정의상 물질과 기술 영역에서의 변화를 가리킨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의 이 말은 일견 주장의 참신함을 강조하기 위한 상투적 수사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이 문구에 비유는 들어있지 않다. ‘단어’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물질에 근거하여 파악한다는 것은 책의 바탕을 이루는 생각으로서, 단어가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그래픽적인 고안이 있었기에 비로소 발명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표제인 ‘획'은 이러한 시각적 장치의 근본에 있는 요소로, 라틴 문자 고유의 형태 구조와 당대의 기술적 조건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가장 순수한 형태다.

 

문자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명은 서구 문명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문자의 발명은 지식의 보존과 유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문명 발전의 근간이 되었고, 인쇄술의 발명은 텍스트의 생산과 수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근대 세계 성립의 주요 동인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서구 문화사의 일반적 서술 경향과는 달리 두 사건 사이에 그에 준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있었음을 주장하는데, 단어의 발명, 즉 띄어쓰기를 통해 글자를 단어 단위로 분리해서 적는 표기 방식의 발명이 그것이다. “모든 서구 문명에서 읽기란 사전적 단어라는 표시를 한눈에 하나에서 몇 개까지 단어 단위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수행되기 때문”에, 단어의 형상을 지각 가능하게 한 이 새로운 표기 방식의 발명은 단순한 표기법 상의 변화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마치 시계의 발명에 의해 시간의 경과가 일정한 단위로 쪼개진 공간의 연속으로 번역됨으로써 근대의 기계적 시간 개념이 ‘발명'된 것처럼, 구어에서 시간의 분절로 나타나던 언어의 구조가 공간의 문제로 치환된 것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읽기를 가능하게 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단어 형상의 형성에 기준을 두고 타이포그래피 분야를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지면 위 흰 공간에 주목하게 된다. 단어란 글자들 간의 관계 설정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개별 글자(검은 형상)의 형태가 어떠한가는 부차적 문제다. 중요한 것은 글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 요소인 흰 공간을 어떻게 조작하느냐로서, 단어를 이루는 낱글자들은 하나의 단위로 보이게끔 묶어주고, 묶여진 단어들끼리는 인접한 것과 연결되어 보이지 않도록 서로 떨어뜨리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능적, 미적으로 탁월한 단어 형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단어 형상 만들기라는 작업은 단순한 ‘띄어쓰기'로 끝나지 않는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레벨에서 공간이란 언어의 구조가 번역된 결과인 바, 흰 공간은 이에 대응하는 몇 가지 위계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음소 -> 음절 -> 단어 -> 문장 순으로 확장되는 연쇄는 그대로 글자 내부(의 흰 공간) -> 글자 사이(의 흰 공간) -> 단어 사이(의 흰 공간) -> 글줄 사이(의 흰 공간)의 관계로 대응되는 것이다. 최적의 단어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이 모든 레벨의 흰 공간을 유기적으로 조직할 때 가능한 일이다.

위계가 분명한 세계를 규율하고 싶다면 그 근원에 도달해봐야 할 것이다. 저자는 ‘획’이야말로 흰 공간의 연쇄를 가장 안쪽까지 밀고 들어갔을 때 만나게 되는 원초적 형태라고 주장한다. 획은 획 굵기 대비 형태에 따라 평행이동, 회전이동, 팽창변형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진정한 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평행이동에 의해 만들어진 획이다. 평행이동은 납작펜의 각도를 고정한 상태에서 쓴 손글씨에서 나타나는 형태로 너비대응점의 크기와 방향각도가 일정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흔히 ‘고딕체’라고 불리는 중세 시대의 손글씨가 이에 해당한다. 일찍이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퍼에 의해 “퇴폐적”이라 비난받았던 이 손글씨를, 저자는 현대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본성이라 여겼던 바로 그 덕목들을 동원하여 옹호한다. 순수함, 체계적, 명료함 등이 그것이다. 고딕체의 형태는 납작펜으로 라틴 문자의 형태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형태다. 완성된 글자는 자신의 구조와 물질적 조건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너비대응점이 필압이나 습관 같은 “우연적”이고 “사소한” 요인에 의해 부풀거나 회전하지 않으므로 글자들 사이에 일관된 규칙을 유추해낼 수 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좁은 글자사이 간격이나 굵은 획 굵기 역시 기능성을 고려한 선택이었으니 글자들 간의 결속력을 높임으로써 단어 형상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손글씨가 이후에 나타난 서구의 모든 서체들의 형태 규범이 되었다는 점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서 손글씨는 고립된 영역으로서, 계몽의 빛이 비추는 — 인쇄술에 의해 만들어진 — 근대 세계의 반대편, 이른바 ‘중세의 암흑’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타입과 타이포그래피의 발전은 손글씨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여겨졌고, 이는 흔히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는 했다. 저자는 타이포그래피와 손글씨 사이에 존재하던 이러한 단절을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과감하게 연결한다. 예컨대 체계적이고 규격화된 접근법으로 현대적 서체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로맹 뒤 루아’가 실제로는 왕의 집무실 서기의 손글씨를 원본으로 삼은 것이었다든가, 텍스투라체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인문주의적 로만체와의 유사성을 설명한다.(이 경우에도 원본은 물론 텍스투라체다.)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에서 현대성을 표현할 가장 근원적, 자연적 소재로 지목되었던 산세리프체는 팽창변형 세리프 서체에서 획 굵기 대비를 제거한 결과일 뿐이었다.     

 

저자는 서구 문명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그 수많은 하위 분과 중 하나인 타이포그래피, 다시 그중에서도 가장 디테일한 ‘획'이라는 세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주장을 전개한다. 그는 이 책이 불합리하게 고립되었던 소수자에게 응당 주어졌어야 할 보상을 돌려주려는, 역사의 방향을 전환하려는 기획임을 숨기지 않는다. 문화사에 있어서는 문자의 형태를 다루는 직군 — 오늘날 타이포그래피라고 불리는 — 이 세운 공로를 인정케하고,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 있어서는 획과 손글씨를 분야의 근본의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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