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치홀트 지음, 안진수 옮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안그라픽스, 2014
* 이 글은 2014년 12월에 발행된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학회지 <글짜씨 10: 얀 치홀트>에 실린 글로서 안그라픽스에서 2014년 발행한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서평이다.
ㅡ
1946년 얀 치홀트가 막스 빌과의 논쟁 과정에서 남긴 글 「믿음과 현실(Glaude und Wirklichkeit)」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운동에속해 있고 또 이끌었던 기간을 1924년부터 1935년까지로 잡는다. 1924년은 본명 ‘요하네스(Johannes)’를 러시아식 이름 ‘이반(Ivan)’으로 개명한 해이고 1935년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Typographische Gestaltung)』이 출간된 해이다. 얀 치홀트의 생애에 전통주의에서 현대주의로, 현대주의에서 다시 전통주의로 돌아가는 두 차례의 ‘전향’이 있었음을 떠올려본다면 이 책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은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다음 단계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쓴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치홀트는 현대주의의 최전선에 투신해 있던 시절에 쓴 첫 번째 저작 『새로운 타이포그래피(Die neue Typographie)』에서와는 사뭇 달라진 어조와 태도를 보여준다.
1928년 출간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는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일종의 복음서였다. 치홀트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운동을 역사적 맥락 속에 집어넣어 아방가르드 미술을 기원으로 삼아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다지고 1914년 이전의 타이포그래피 전체를 낡은 것으로 선언한다. 현대적 삶을 표현할 형식으로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치홀트의 어조에는 정치적 색채가 배어 있었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는 맹렬한 공격과 단호한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중앙유럽에 정착하고야 말았다. 현대인들은 모든 곳에서 그 징후와 마주치고 있다. 가장 열성적인 반대자라 할지라도 종국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1]
이에 비해 『타이포그래픽 디자인(Typographische Gestaltung)』은 정치적 수사가 사라진 대신 도서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실무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책은 모두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에 따라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적 배경과 목적(1-4장). 둘째, 활자체선택과 글줄·글자 간격 조정 등 조판 실무와 관련된 구체적 지침(5-14장). 셋째, 구체미술에서 기원한 평면 조형 원리와 그것을 이용해 다양한 요소를 지면위에서 조화시키는 방법(15-24장).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치홀트가 『근원적 타이포그래피(Elementare Typographie)』에서 말한 타이포그래피의 두 층위, 내적 조직과 외적 조직에 각각 대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각 부분의 마지막 장은 앞의 내용을 포괄,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데(4장 '새로운 또는 기능적타이포그래피의 참뜻과 목적', 14장 '일상적인 소량 인쇄물 작업', 24장 '새로운 책') 새로운 책에 대한 제언이 책 전체의 결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인쇄물 전반을 다뤘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서 도서 디자인의 비중이 극히 작았던 점, 더구나 그 당시 이미 일반적 책에는 전통적 타이포그래피가더 적합하다고 인정했던 점을 생각하면 1928년부터 1935년 사이 적지 않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내용상에서도 가운데 맞춤 타이포그래피의 우수성을 일부 인정한다든가 영국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우호적 시각을 밝히는 등 전통주의로의 회귀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 발견된다.
1935년의 『타이포그래픽 디자인(Typographische Gestaltung)』이 종교적 열정이 누그러진 실용서에 가까웠다면 1991년 한국에서 발행된 안그라픽스의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은 조금 다른 맥락을 지닌다. 동아시아 전체에서도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이 번역된 첫 사례였거니와, 일본 레이아웃 관련 서적을번역한 몇몇 책 이외에 타이포그래피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저작이 없었던 당시 한국 상황에서 이 책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이론과 실천 양측에서 설명해줄 수 있는 최초의 한국어책이었다.
1977년.졸업.후.첫.회사를.다닐.때..(…)
한.서가.가장.아래.칸에서.해진.책.한.권을.발견했다..
얀.치홀트의.책이었다..
본능적으로.느낌이.왔고.바로.사기로.했다..(…)
이.책은.내.삶을.바꿔놓았다..
내가.알던.타이포그라피.지식이.모두.
이.책이.발원점이라는.사실에.흥분했다.. [2]
이상체로 짠 한국어 제호와 푸투라로 짠 독일어 원제, 그리고 ‘typographic’이라는 글자를 해체주의적으로 해석한 그래픽 요소로 이루어진 표지는 마치 보들레르의 현대성 정의를 문구 그대로 시각화해 이 책이야말로 보편성과 당대성을 동시에 갖춘 ‘우리 시대의 책’이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이런 디자인에 힘입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책은 ‘노랑 책’이라는 이명과 함께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디자이너라면 읽어야만 할 필수 도서로 자리매김한다. 말하자면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이 그간 한국에서 가졌던 위상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Typographische Gestaltung)』보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피(Die neue Typographie)』의 그것에 더 가깝다.
이 책은 거의 70여 년 동안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따라서 읽히지 않은 위대한 모던 타이포그래피 책이 되었다. 이 책에 부여된 지위는 이를테면,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검정 돌기둥을 연상시켰다. 무언의, 그러나 모든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지위 말이다.[3]
초판 발행 이후 2014년 현재까지도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은 국내 유일한 얀 치홀트 저작의 번역서이며, 그에 대한 유의미한 연구서 역시 2013년 이전까지 출간되지 않았음을 생각해보면 얀 치홀트란 인물은 그야말로 ‘읽히지 않은 신비한 원전’이었다 할 만하다. (마침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은 2014년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으로 재출간되기 전까지 한동안 절판이기도 했다.)2014년 안그라픽스에서 다시 출간된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을 처음 보았을 때 얀 치홀트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와 배치되는 외관에서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전 판들과 다르게 양장 제본으로 제작되었고, 아리따체와 스크립트체로 짠 재킷의 제호는 파격적으로 보였다. 이전판에서도 내지의 글상자 여백은 안쪽, 위쪽, 바깥쪽, 아래쪽 순으로 점점 넓어지는 형태였지만 2014년 판은 판형 자체가 커지면서 그런 여백이 갖는 고풍스러운 인상이 한층 부각되었다. 섬세하게 다듬은 본문 타이포그래피에서는 안그라픽스식 ‘전통’의 정숙한 익명성이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고전으로서의 권위(초판 당시 ‘내가 아끼는 책들’ 시리즈로 분류되었던 이 책은 재출간되면서 ‘ag 클래식’ 시리즈라는 새로운 소속을 얻게 되었다.)를 강조한 듯한 이 디자인이 만약 얀 치홀트라는 신화적 인물의 아우라를 의식한 결과물이라면, 지나치게 노골적이지 않은가?
오늘날 스타일이니 트렌드니 하는 휘황찬란한 신기루에 눈이 어두워 잊고 지낸 이 정신, 타이포그래퍼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은장도처럼 지녀야 할 정신을 얀 치홀트의 글을 통해 다시 일깨우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4]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책의 디자인의 일차적 목표가 기념비 제작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다. 그보다는 원서를 규칙으로 삼아 책에서 제시하는 치홀트의 디자인 지침을 한국어 사용 환경에서 번역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일단 재킷의 전체적 인상이 원서와 유사해졌으며, 스크립트체와 본문용 서체의 혼용 역시 원서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슬래브세리프 서체인 시티City를 아리따로 옮긴 것 역시 수긍이 가는 선택이다. (예컨대안그라픽스 도서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었던 sm견출고딕이었다면 지나치게 익명적으로, 시티보다는 유니버스Univers의 대체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외에도 재킷 앞표지에 출판사 로고를 생략한다든지, 바깥 여백에 쪽번호가 위치한다든지 하는 등의 세세한 부분에서도 얀 치홀트의 영향이 느껴진다. 요컨대이 책은 내용과 형식 모두 성실하게 번역한 완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한국어판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을 2014년 현재 다시금 읽어야만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완역본에 대한 도서애호가적 즐거움을 제외하고 말이다.
2014년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자신이 속한 시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것은 책의 형태에 대해 말하는 책이고, 1935년의 저자는 내용과 형식 양자를 결합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음’을 구현하고자 했다. 2014년판은 한국어판 초판에 보였던 뚜렷한 자기 주장을 감춘 대신 원본에 대한 보다해상도 높은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저자와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시차를 순순히 드러낸다. 이윽고 독자 앞에 놓이는 것은 자신의 눈으로 그를 판단할 기회또는 의무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책을 오늘날에 맞는 우리의 도구와 수단으로 만드는 법을 배워나가야 하며 고전의 틀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책과 비슷한 형태의 인쇄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문학 작품도 함께 일컫는다.[5]
만약 누군가 이 책을 읽어봄으로써 치홀트의 “참뜻”에 동의하게 되었다면, 그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예술이다, 혹은 예술이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예술은 아니다.”[6] 치홀트가 자신의 작업을 역사의 일부로 집어넣음으로써 대면할 적과 나아갈 방향 설정을 명확히 할 수 있었듯, 같은 방식으로 독자는 자신의 영점을 설정할 때 치홀트를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동의할 수 없다 한들 또 어떻겠는가. 이 책은 ‘가야 할 길’이 분명해 보였던 한 시대를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고, 생활세계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냉소 외에도 필요한 것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ㅡ
[1] 얀 치홀트,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독일 인쇄 교육 협회 출판사, 1928, 7쪽(크리스토퍼 버크, 능동적 도서: 얀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박활성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13, 78쪽 재인용)
[2] 안상수, 추천의 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안그라픽스, 2014, 6쪽
[3] 크리스토퍼 버크, 『능동적 도서: 얀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박활성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13, 77쪽
[4] 안진수, 번역자의 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안그라픽스, 2014, 127-128쪽
[5] 얀 치홀트 지음, 안진수 옮김,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안그라픽스, 2014, 135쪽

덧글